알 힐랄은 사우디아라비아 프로 축구리그서 무려 66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등 가장 화려한 성적을 자랑한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4차례나 우승하는 등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팀 중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구단이기도 하다.
이렇듯 인상적인 역사를 써왔으나, 알 힐랄의 축구팬들은 지난 19일(현지시간)이야말로 알 힐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날 네이마르 주니어(브라질)가 알 힐랄과의 계약을 체결하고 열광하는 팬 6만5000여 명 앞에 소개됐다.
네이마르의 얼굴을 투사하는 드론 쇼에 이어 화려한 불꽃놀이가 리야드 하늘을 밝힌 가운데 네이마르는 알 힐랄의 짙은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신을 알 힐랄의 팬이라 밝힌 압둘라 알무타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겐 매우 특별한 날이다. 네이마르는 그야말로 엄청난 스타다. 네이마르 덕에 알 힐랄 팬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면서 “아마 이제 모든 브라질이 우릴 응원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축구팀도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사우디아라비아를 글로벌 축구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가 지난 1월 알 나스르에 이적하면서 시작됐다. 호날두는 2년 6개월 동안 4억달러(약 5300억원) 이상을 받는다.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사우디 리그는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스타들을 대거 데려왔다. 우선 카림 벤제마(프랑스)가 지난 6월 ‘레알 마드리드’에서 ‘알 이티하드’로 이적했다.
그 외에도 사디오 마네(세네갈), 리야드 마레즈(알제리), 조던 헨더슨(영국), 은골로 캉테(프랑스) 등 많은 유명 선수들이 유럽 리그를 떠나 사우디행을 택했다.
이번 여름 ‘사우디 프로 축구리그(SPL)’가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쓴 이적료는 9억달러를 웃돈다. 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이어 2번째로 많다.
게다가 이 금액엔 상위권 유럽 리그에 속한 선수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제시한 엄청난 연봉은 포함돼 있지도 않다.
한편 카를로 노라 SPL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에 대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SPL이 경기 질과 수익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의 리그로 거듭날 때까지 재정적인 후원을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SPL은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 스페인의 ‘라 리가’와 같은 리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한다.
노라 COO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진 계속 큰돈을 들여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할 것이라면서도, 동시에 SPL 또한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라 COO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목표 달성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지원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상태”라면서 “그러나 SPL도 자체적으로 재정적으로 커지는 몸집에 책임을 지고, 정부 지원 자본에 온전히 의존하지 않도록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거듭나겠다”고 덧붙였다.
소프트 파워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SPL뿐만 아니라, 포뮬러 원(세계적인 자동차 경주 대회), 리브(LIV) 골프 등 각종 스포츠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권 유린 관련 의혹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스포츠 워싱’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미지와 명성 관리만으론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러한 투자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프랑스 파리의 ‘스케마 비즈니스 스쿨’에서 스포츠 및 지정학적 경제학을 가르치는 사이먼 채드윅 교수는 “여러 국가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소프트 파워 투사를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이용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현재 휘두르는 정책적 도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는 채드윅 교수는 “국가들은 전 세계 민심을 얻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 미국, 프랑스, 인도를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이러한 정책을 시행한다. 이제 사우디아라비아도 똑같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러한 적극적인 투자 이면엔 경제 다각화에 대한 바람도 자리한다. 석유 수출 수입이 줄어들기 전 경제 구조를 다각화해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현재 석유 부문은 사우디아라비아의 GDP에서 무려 40% 이상을 차지한다..
실제로 스포츠는 사우디아라비아왕국의 실질적인 통치자라 할 수 있는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비전 2030 프로젝트’의 주요 축 중 하나로 손꼽힌다. 경제 구조 다양화 및 여러 분야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사우디 경제의 석유 의존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노라 COO 또한 “SPL은 ‘비전 2030’의 일환으로 사우디 국민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리그의 수준을 향상할 수 있는 지역 인재 개발을 꿈꾼다”고 설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인구의 80%가 운동을 하거나, 시청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국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러한 과감한 투자가 과연 제대로 성과를 낼지 판단하긴 이르지만, 적어도 축구 강국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은 생생히 느껴진다.

댓글 남기기